'10.29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가 추모이고 애도인가?'라는 언론노조의 논평에 대한 반론

가디언21 | 기사입력 2022/11/15 [07:42]

'10.29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가 추모이고 애도인가?'라는 언론노조의 논평에 대한 반론

가디언21 | 입력 : 2022/11/15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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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참사의 희생자든 추모와 애도를 받아야 할 유족이 요구하지 않았다면 그 신상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보도윤리이자 고인에 대한 예의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공개한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 두 매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하지만, 언론노조가 이같이 안이한 '면피성' 논평을 낸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이번 명단 공개는 재난보도준칙 제11조(공적 정보의 취급), 제18조(피해자 보호) 및 제19조(신상공개 주의)를 모두 위반한 심각한 보도윤리 불감증의 결과다." 언론노조의 이런 논평은 과연 회원사들의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쳐 고심끝에 발표된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의 '자기검열'로 느껴진다.  

 

언론노조는 기자협회가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의 이 조항들을 '금지옥엽'인양 핑곗거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조항들은 좀 더 현실성 있게 제대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해외 유수의 매체들은 국내외 희생자 상당수의 사진과 사연을 실명 보도하면서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름도 공개를 원치 않는 유족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반영토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희생자 명단이 유족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들레>는 공개 후 이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일부 희생자 명단을 ‘김00′ ‘안00′ 등과 같이 실명에서 익명으로 전환했다.  

 

한편, ‘명단 공개가 추모’라고 주장해온 야당 쪽에서는 또다른 분위기가 표출됐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약 90분 동안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동석한 민주당 의원들에 따르면, “유가족 중 명단이 공개되고 사진이 공개되면서 제대로 된 추모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갖고 계신 유가족이 상당수 있었다.” “오늘 저희가 받은 느낌은 오히려 이 사건이 빠르게 잊힐까봐 걱정하실 분들이 대다수고, 156명 공개에 대해서 부정적 의견을 표명하는 유가족은 없었다.” 

 

추모와 애도를 받아야 할 유족들은 지금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어 정부나 언론에 대해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진퇴양난'의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서로 누가 유족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유족들이 모여서 활발한 의견수렴을 통해 언론 보도, 피해배상 집단소송 등에 관해 자신들의 입장을 공동으로 밝힐 수 있겠는가?  

 

정부가 희생자의 이름, 영정, 위패도 없이 겉치레로 설치해 운영한 분향소는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것이었다. 지금까지 공적인 분향소의 설치에 관한 관례와는 어긋나도 너무나 어긋난 것이다.  

 

1994년 29명이 죽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나 이듬해 502명이 죽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도 희생자 명단 공개는 물론 이들을 합동으로 추모하는 분향소 설치에 이어 비석까지도 세웠었다. 

 

희생자 명단 비공개와 '얼굴없는' 분향소 설치는 유족들간의 공동 대처를 원천적으로 막고 일반 조문객들의 비탄과 울분을 잠재우려는 정부ㆍ여당의 비열한 작태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애도 물결을 최소한으로 막으면서 애도기간만 넘기고 나면 아랫도리 경찰관 몇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번 참사를 적당히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저의가 깔려 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언론노조의 이번 논평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태원 참사를 축소, 은폐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이같은 작태와 그 결을 같이 하는 어이없는 것으로 비춰진다. 희생자들의 신상명세인 나이, 직업, 주소 등이 아니라 최소한 이름조차 보도하지 못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마저 소홀히 하는 것이다.  

 

<민들레>는 공개 배경에 대해 “지금까지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 당국과 언론은 사망자들의 기본적 신상이 담긴 명단을 국민들에게 공개해 왔으나, 서울 이태원에서 단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를 걷다가 느닷없이 참혹한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면서 "참사 발생 16일 만에 이름을 공개한다. 진정한 애도 계기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들레>나 <뉴스타파>가 참다 못해 뒤늦나마 '고육지책'으로 희생자들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른 언론사들도 진작에 심사숙고했어야 할 일이었다. <민들레>나 <뉴스타파>의 이번 보도는 '보도 윤리의 불감증'을 넘어 오히려 언론의 정도를 가고자 하는 치열한 기자정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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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충웅 칼럼니스트는 경향신문 걸프전 종군특파원을 지냈다. 문화일보 재직중 북ㆍ중 국경 기아현장 밀착취재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사회부 사건/행정팀장, 국제문제 전문기자를 거쳐 국회 국방위 정책보좌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 현재는 바른언론실천연대(언실련) 및 새언론포럼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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