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웅 칼럼니스트] 영국의 추락과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정치인이 잘못하면 나라가 어찌되는지
브렉시트후 회복 안된 정책능력
브렉시트 오판 이어 부실한 경기부양

가디언21 | 기사입력 2022/10/05 [00:09]

[최충웅 칼럼니스트] 영국의 추락과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정치인이 잘못하면 나라가 어찌되는지
브렉시트후 회복 안된 정책능력
브렉시트 오판 이어 부실한 경기부양

가디언21 | 입력 : 2022/10/05 [00:09]

영국 정치인들의 판단미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던 영국이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의 후유증,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인 글로벌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과 같은 겹겹의 악재들로 휘청거리고 있다.  

 

영국이 악화일로의 상황에 빠지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브렉시트의 저주’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6년 브렉시트를 밀어붙인 집권당(보수당)과 선동가들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여 각종 규제의 굴레를 벗어나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한 대대적인 자유무역 국가로 변신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정치인들의 나태한 판단이었다. 그같은 장미빛 전망은 빛이 바랬다. 

 

그 한 예로, 세계 금융의 허브라고 불리던 영국 런던의 금융 특구 '시티오브런던'은  브렉시트 충격에 이어 코로나 재택근무로 50만명에 이르던 출퇴근 인구가 급감하자 이 지역 상권이 완전히 무너졌다. 건물마다 임대광고가 줄지어 있고 사무실이 주택으로 개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은 지난 2020년 1월 브렉시트를 단행한 후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11월 EU와 47년간의 동반자 관계를 끝냈다. 그 이후 영국 경제는 브렉시트로 각종 상품과 인력의 극심한 수급 불균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국의 인력난은 강화된 이민 규정과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쳐 더욱 심화됐다. 게다가 식품 등을 수입하는데 브렉시트 때문에 수입 절차가 복잡해지거나 관세가 부과되고, 파운드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수입품 가격이 급등했다.

 

또한 에너지 가격 급등이 방아쇠로 작용하면서 연쇄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소비자 물가가 계속 치솟고 있다. 가스와 전기 요금이 폭등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대해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경제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이 전쟁이 벌어지기 1년 전만 해도 영국은 한 달 평균 4억9900만 파운드(7900억 원) 어치의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해 왔다. 미국을 추종한 경제제재 결정은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0.1%까지 치솟았다. 이는 같은 기간 독일(7.5%), 프랑스(6.1%), 이탈리아(7.9%) 등 EU 국가들은 물론 미국(8.5%)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치로 G7 가운데 가장 높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연내 물가 상승률이 13%가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영국의 물가 상승률이 내년 초 22.4%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영란은행은 올해 4분기부터 내년 말까지 영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 기간의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고, 골드만삭스는 2024년까지 이같은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영국 버밍엄에서 지난 2일 집권 보수당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임금은 올리고 공공요금은 낮추고 트러스는 물러나라"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전날에도 50여개 도시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사진=EPA/연합뉴스  


EU내 영국과 브렉시트후 영국

 

물가가 이렇게 뛰자 영란은행은 지난 8월 기준금리를 1.25%에서 1.75%로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영란은행의 빅스텝은 1995년 2월 이후 27년 만이다. 이로써 영국의 기준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미 연준의 기조와 보조를 맞춰 긴축 통화정책을 가동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끝난 지 나흘째인 23일 리즈 트러스 신임총리가 깜짝 놀랄만한 경제회생 방안을 발표했다. 50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인 450억 파운드(약 67조 9423억 5000만원)의 '부자감세 계획'은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영란은행은 긴축으로 돌아서는데, 정부는 확대재정으로 나선 것이다.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가 추진했던 법인세 인상을 원점으로 돌리는 한편 국채 발행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식시장은 휘청거렸고, 국채 금리는 치솟았으며,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셈이었다. 나라 안팎으로부터 강력한 비난이 빗발치자, 결국 트러스 총리는 이 계획을 발표 열흘 만인 지난 3일 전격 철회했다. 이에 외환·주식·채권시장은 일단 진정세를 보였다.

 

금융시장 전문가는 "브렉시트 이후 영란은행과 영국 정부가 독립적인 정책운영 능력이 떨어졌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유로화가 기축통화 자리에 올라선 반면 파운드화는 이미 기축통화에서 멀어졌는데, 과거 파운드화의 영광에 취해 대규모 국채발행이 파운드화에 미칠 영향을 간과했다. 정부와 중앙은행간 조율이 안된 것도 이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아보였다. 이 전문가는 "20년 가까이 유럽연합(EU)이 영국의 통화정책을 맡아왔고 재정정책 역시 EU와 협의해 왔는데, 그동안 영란은행의 통화정책 전문가들이 자리를 떠났다"고 말했다. 

 

▲ 자료= 블럼버그  © 가디언21

 

영국 파운드화의 미국 달러화 대비 가치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달 23일 영국 정부의 대규모 감세안 발표 직후 파운드화 가치가 한때 역대 최저치인 파운드당 1.0384 달러로 폭락했다가 최근 1.140 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내년 ‘1파운드=1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주요 7개국(G7) 국가들 가운데 경제 성장이 가장 더딜 것으로 전망되는 국가로 영국을 지목했다. IMF는 2023년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5%에 그치며 G7 중 최하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세계 5위 경제대국인 영국은 올해 1분기 GDP에서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에 추월당했다고 밝혔다.

 

▲ 열흘만에 부자감세 정책을 철회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사진=EPA=연합뉴스


부자감세는 경제를 멍들게 한다

 

그러나 트러스 총리는 다음날 감세를 통한 경제 성장정책에 들어갈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복지혜택을 사실상 축소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같이 난제들이 겹겹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지난 3일 영국 의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조기총선 청원 건수가 50만건에 육박, 이미 의회의 논의 기준인 10만건을 훌쩍 뛰어넘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수당의 지지율은 21%에 그친 반면, 노동당은 54%의 지지율을 기록해 보수당과의 격차를 90년대 후반 이후 가장 큰 33%포인트로 벌리며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러스 총리가 물러나지 않고 버티면 조기총선 실시는 어렵다. 여야 정치권에서 현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경우, 영국은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9억 달러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은 데 이어 또다시 IMF에 손을 내밀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정치인들과 그 선동가들의 잘못된 결정이 영국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 정부도 전례없는 경제위기의 해소책으로 초대기업 법인세 감세, 복지 축소, 종부세 감세 등을 내세우고 있다. 1980년대 레이건·대처 시대 때 실행한 부자감세 정책은 이미 낙수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트러스 총리에게 면전에서 "낙수효과라는 말이 지겹다"고 할 정도다. 오히려, 감세할 세금을 복지에 쓰면 소비진작으로 이어져 경제회복에 기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부자감세 정책기조를 밀어부치려 하고 있다.

<출처: 2022년10월5일자 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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