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송가(歸天頌歌). '귀천'에는 목순옥씨 없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숨결은 느껴집니다.

가디언21 | 기사입력 2022/03/19 [01:10]

'귀천'송가(歸天頌歌). '귀천'에는 목순옥씨 없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숨결은 느껴집니다.

가디언21 | 입력 : 2022/03/19 [01:10]

▲김기만 전 청와대 춘추관 관장©가디언21

 '귀천'송가(歸天頌歌). '귀천'에는 목순옥씨 없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숨결은 느껴집니다].

 

 인사동

 전통차집 '귀천'은 한때 고 천상병(千祥炳) 시인(1993년 작고)의 부인 목순옥씨가 운영해서 인기를 끌었던 곳입니다.

 

 이제 이 곳에 천 시인의 흔적은 좀 옅어졌습니다.

 인생 소풍 왔다가 29년 전에 하늘나라에 간 천 시인은 그렇다 치고, 부인 목순옥 씨가 별세한 지도 12년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줄기차게 '귀천'을 찾습니다.

 37년 전인 1985년 개업한 '귀천'은 2010년 목순옥씨가 떠난 뒤 조카(목영선)가 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친구 몇 명과 인사동에서 점심을 하고, '귀천'에 들렀습니다.

 카페 곳곳에 천 시인의 학창시절, 청년시절, 신혼시절 등의 사진이 걸려 있어 그래도 시인의 자취를 느끼게는 합니다.

 

 벽에 시 '귀천'이 걸려 있습니다. <ᆢ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소풍 끝내는 날/가서/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카페의 한 쪽 벽에는 세월로 빚은 도자기 컵들이 진열되어 있지요. 판매품입니다. 천 시인의 '맑은 영혼'과 '욕심없는 행복바라기'를 이 도자기 컵에 담아가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카페 '귀천'은 '서울 미래유산'이기도 합니다.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입니다. 미래세대에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인 셈이죠.

 

 카페에 앉아 오랜만에 삶에 대해 성찰해 봤습니다. 어려운 화두(話頭)죠.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이 되어서도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지지 않아 고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심하던 어느 날, 열차여행 중 홍익회 판매원이 "삶은 계란"이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그래, 삶은 계란이야"라고 깨달았다나요! 김 추기경 말씀이니까 웃자는 얘기 속에 뼈가 있어 보입니다. 제가 했으면 영낙없는 '아재 개그'로 야유받지 않겠습니까?

 

 김수환 추기경은 '루머감각'(YS는 생전에 실제로 '유머감각'을 꼭 '루머감각'이라고 했지요. "국토를 간통<관통>하는 강간<관광>대국"은 제일 유명한 작품이죠)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수행 신부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비가 몇 도인지 아는가?". 답을 할 수 없지요. 기온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추기경은 "비는 5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비가 오도다/비가 오도다/ 마지막 작별의 울음과 같이/ᆢ가만히 불러보는/ 사랑의 탱고"(비의 탱고, 도미).

 

 삶이 뭘까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냥 웃으면 답이 보일까요?

 "강냉이가 익걸랑 와셔 드셔도 좋소/왜 사냐건 웃지요"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이백의 '산중답속인'을 읊어볼까요?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나에게 물은즉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는가/웃고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한가하구나".

 

삶이 무언지는 결국 모르겠네요. 끝내 해결되지 못하고 끝나는 문제. 철학용어로는 '아포리아'(aporia)라고 합니다만ᆢ

 

 갑자기 중2 때 과외선생에게 배운 '영어 단어 중 제일 긴 단어'가 기억에 소환됩니다. 29자.

 Floccinaucinihilipilification.

 뜻은 '뜬구름 같이 여기기'.(꼼꼼히 세어보세요. 29자 맞습니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의 이 글이 바로 그 뜻 아니든가요?

 불의이부차귀(不義而富且貴), 어아여부운(於我如浮雲).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부유해지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나에게 있어 '뜬구름'과 같구나.

 

 오랜만의 인사동 순례 길, 삶이 무언지 여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귀천'에 들를 수 있어 잠시라도 행복했습니다.

 (제 뒤로 천상병 문순옥 '천사 부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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