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가디언21 | 기사입력 2022/03/13 [19:52]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가디언21 | 입력 : 2022/03/13 [19:52]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그대여.

-  이 또한 지나간다네.

-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모두 힘냅시다!

 

▲김기만 청와대춘추관 관장©가디언21

 
영육(靈肉)이 다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상태시죠? 

 

지식이 깊진 않으나 머리를 짜내어 음악과 시(詩) 얘기로 상처를 보듬고 꿰매보려 합니다

 

10일 오후. 패배의 악몽에 짓눌려 있던 저에게 <내 마음의 클래식>이라는 '베셀' 작가인 절친이 문자를 보냅니다.  

 

[두 곡이다. 모짜르트, Ave Verum Corpus.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특별히 최고의 명반인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를 보낸다. 그냥 듣고 또 들어라.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래. 그렇지? 모든 건 지나간다". 

 

"슬픔이 삶으로 밀려와/소중한 것을 쓸어가 버릴 때면/그대 가슴에 대고 말하라/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원래는 다윗왕이 한 세공사에게 반지를 만들라고 명하며 "너무 기쁠 때 교만해지지 않고, 절망과 시련에 빠졌을 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넣으라"고 했다지요. 답을 못찾던 세공사는 지혜롭기로 이름난 왕자 솔로몬(Solomon)을 찾아갔고, 그가 써준 글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고 전합니다. 그 위에 덧불인 글은 후세에 

랜터 윌슨 스미스가 붙였고요.

 

<영원한 것은 없다. 끝이 없는 것도 없다. 그러니 희망의 사다리를 꽉 붙들어라>. 이런 뜻을 주려는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모짜르트 곡은 귀에 

익지 않아 찾아봤습니다. 요양원에 입원한 아내를 위해 모짜르트가 1791년에 헌정한 곡이라고 합니다. "진실한 성체(聖體)를 찬미합니다"라는 뜻이고요.

레퀴엠(장송곡) 분위기여서 한번 듣고 멈추었어요. 

 

다음은 "운명'. 역시 '운명'답습니다. 1974년, 48년 전 녹음인데 처음부터 압도합니다. 청력 상실이라는 감당 못할 역경을 이기고, 이 위대한 불멸의 작품을 완성해낸 베토벤의 숨결이 살아 다가옵니다. 4악장 '승리의 찬가'에서는 그냥 벌떡 일어나 벽을 두드립니다. "통곡의 벽'입니다. 그날만 열번은 들은 듯 하네요.

 

다시 시로 가봅니다.

시는 우선 땅이 넓어 좋습니다. 별별 시가 다 있지 않습니까?

 

저는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할 때, 프랑스 국회에서 '미셸 로카르' 총리가 대정부 질문에 답하면서 프랑스의 국민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1854-1891)의 명시 '지옥에서 보낸 한 철'(Une saison en enfer)을 낭송하고, 답변을 시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여야 격돌이 심한 여름이었는데, 총리의 답변은 걸작이었습니다. "여야 의견차도 크고, 날도 더워 짜증나시죠? 시에는 여야가 없습니다. 제가 '랭보'를 낭송할 테니 모두 편한 자세로 3분만 쉬십시요". 

감동이 커 이 모습을 기사로 썼습니다. 의정논의는 잠시 멈췄고, 고전풍 물씬한 아름다운 의사당에는 총리의 시 낭송 소리가 낭랑하게 퍼져갔습니다. 시와 정치, 참 멋졌어요.

 

프랑스에는 초단시(超短詩)로  유명한 쥘 르나르(Jules Renard.1864-1910)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쓴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는 '뱀'(불어,serpent. 영어snake)입니다.

전문은 <너무 길다, trés longue>입니다.

 

이 시인의 '노새'라는 시는 <어른이 된 토끼>가 전문이고요.

'나비'라는 시는 <둘로 접은 사랑의 편지가 꽃의 주소를 찾고 있다>. 그래도 좀 긴 편인가요? 나태주 시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장난 같은 시가 많지만, 소설도 썼고 무엇보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만만찮은 작가입니다.

 

시 같지 않은 시 때문에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

류근 시인의 시

<괜찮습니다>입니다. 기뻤습니다. "이런 것도 시가 된다면 나도 시인 될 수 있겠구나"라는 호기심을 주었어요.

 

<또 졌습니다. 괜찮습니다.

군인이 지배하는 나라에도 살아봤습니다.

사기꾼, 무능력자가 지배하는 나라에도 살아봤습니다.

괜찮습니다. 

안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우리끼리

서로의 체온을 확인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안 죽습니다.

죽으면 안 됩니다.

 

진심을 다해서

나쁜 놈이 지배하는 세상 막자고

울며 소리치며 온 힘을 다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아,

우리 시대의 실력이 여기까지입니다.

나라의 운명이 여기까지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힘을 냅시다.

이제 검사가 지배하는 나라에 몇년 살아봅시다.

어떤 나라가 되는지 경험해 봅시다.

어떤 범죄가 살고

어떤 범죄가 죽는지 지켜봅시다.

보수를 참칭하는 자들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켜봅시다.

나라가 어떻게 위태로워지는지 지켜봅시다.

청년과 여성과 노인들이 얼마나 괴로워지는지

지켜봅시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더 가난해지는지

지켜봅시다.

 

검사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나라

재미있게 살아봅시다.

 

괜찮습니다.

안 죽습니다.

 

권력보다

백성과 역사가 훨씬 오래 살아남습니다.

권력은 죽어도

백성은 살아남습니다.

나라는 망해도

백성은 살아남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죽지 말고

살아남읍시다.

검사가 지배하는 나라

재미있게 즐겨봅시다.

 

괜찮습니다.

당신이 거기 계셔서 괜찮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어서 괜찮습니다.

진정으로

괜찮습니다.

 

우린 또 이기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위로가 좀 되셨나요?

 

그럼 이번에는 꼭 3월 이맘 때 쯤이면 매스컴에서 소개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애절한 유래를 알아볼까 합니다.

 

 중국에는 전설적인 미녀 4명이 있습니다.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 초선(苕蟬)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이 중 왕소군과 관계됩니다.

 

한나라 궁녀 중 당대  최고의 미녀이던 왕소군은 한나라가 흉노의 침략에 함락되면서 흉노의 왕 '초한야 선우'에게 시집(끌려)가게 됩니다.

오랑캐 땅에서 한나라 임금을 그리워하던 왕소군의 심정을 뒷날 당나라의 시인 동방규(東方珪)는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자연의대완(自然衣帶緩).

비시위요신(非是爲腰身).

 

오랑캐의 땅에는 화초도 없네.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자연히 허리띠만 느슨해지는 것은.

 

허리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네.

 

애절한 연시(戀詩)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랑캐 땅에서 수모의 몇해를 견디며 허리가 가늘어졌는데, 그건 날씬해진 허리를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읍소(泣訴)입니다. 님 그리움에 허리가 쏙 빠졌다는 애끓는 고백입니다. 이 찬란한 봄에도 '정치의 얼음덩이' 때문에 아직 봄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모두 2022년 3월 10일의 왕소군인 셈입니다.

 

역사기록을 보면 왕소군은 흉노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72세까지 살았습니다.  

 

오랑캐 땅이든, 2022년의 대한민국 땅이든 풀은 다시 돋아나고, 봄은 다시 옵니다. '집단 광기'가 때로 이 땅과 이 하늘을 유린해도, 그리하여 히틀러와 트럼프를 연상하며  불면(不眠)의  밤을 지내시게 되더라도, 여명(黎明)은 아침해로 바뀝니다. 진실은 거짓을 벗겨냅니다. 어둠은 진실을 덮을 수 없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촛불시위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외쳤던 구호로군요.

 

애송시 하나만 더 공개하고 맺을까 합니다. 강은교 시인의 '아침'입니다.

 

<이제 내려 놓아라

어둠은 어둠과 놀게 하여라

한 물결이 또 한 물결을 내려놓듯이

한 슬픔은 어느 날

또 한 슬픔을 내려놓듯이.

 

그대는 추억의 낡은 집

흩어지는 눈썹들

지평선에는 가득하구나

어느 날의 내 젊은 눈썹도 흩어지는구나.

 

그대, 지금 들고 있는 것 너무 많으니

길이 길 위에 얹혀 자꾸 펄럭이니.

 

내려놓고, 그대여

텅 비어라

길이 길과 껴안게 하라

저 꽃망울 드디어 꽃으로 피었다>.

 

조용히 이 시를 읇조리면 마음이 좀 비워지는 듯합니다. 

마음 내려놓기에 마성(魔性)의 시인가 봅니다.

 

다시 노래로 갑니다, 원곡은 김현성이 불렀지만 가객(歌客) 김광석 노래로 더 유명한 '이등병의 편지'. 수십번 따라 불렀습니다. 

 

"열차시간 다가올 때/두 손 잡던 뜨거움/ ᆢ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실은 오늘도 '운명'을 두어번 또 들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그만입니다. 통곡 한번 더 하고 끝내렵니다. 5년은 무척 길어 보이지만 또 짧은 시간일 수 있습니다. 영겁(永怯)에서 보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이고요. 

 

이것도 지나갑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깁니다!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청와대 춘추관장,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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