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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한 달이 다가오는 늦은 가을, 가을시(詩) 몇 편으로 위로를 드립니다:가디언21

'이태원 참사' 한 달이 다가오는 늦은 가을, 가을시(詩) 몇 편으로 위로를 드립니다

2022.11.26.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 기사입력 2022/11/26 [10:10]

'이태원 참사' 한 달이 다가오는 늦은 가을, 가을시(詩) 몇 편으로 위로를 드립니다

2022.11.26.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 입력 : 2022/11/26 [10:10]


일찍 일어나 문득 생각하니 나흘 후면 11월이 다 하고, 가을도 끝입니다. 그리고 28일이면 돌아보고 싶지 않은 이태원 참사 한 달입니다. 사건 규명도, 어떤 책임자 인책도 없이 참사 한 달을 맞는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지요.

 

대다수 국민이 집단 울화증, 화병에 걸려있는데 이 정부는 참 용감하다 해야 할지, 뻔뻔함의 극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꼭 그 꼴입니다. 이 정권이 그렇게 강조하는 '상식', '공정'과 맞는지 경악할 뿐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잠도 잘 못 이루시는 분들께 가을에 맞는 짧은 시 몇 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석형 언론중재위원장(73, 법무법인 산경 대표) 선배는 평소 약 2백 편의 시를 외웁니다. 모임 끝 무렵 꼭 시 한편을 낭송해 주시는데, 그렇게 멋지고 부럽더군요. 

 

그래서 저도 노력해 보는데 두뇌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외우는 시가 아직 10편 남짓합니다.

 

# 짧고 멋진 시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는 프랑스의 노벨상 작가 쥘 르나르(Jules Renard)의 '뱀'(snake, 불어 serpent)입니다.  시 전문(全文)이 <너무 길다>(too long, 불어 trop long)입니다. 

 

함민복 시인의 시 '가을'도 촌철살인입니다.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울림이 있지요?

 

이경림 시인의 같은 제목 '가을'은  낙엽을 노래합니다.

<사랑해 사랑해/바싹 마른 몸 동그랗게 말고/하늘 하늘 속으로 곤두박질치는/저 나뭇잎>.

듣기만 해도 떨어지는 낙엽이 떠올라 좋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는  낙엽에서 인생의 철리(哲理)를 말합니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고 할지라도/그대여/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요/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정호승 시인의 '귀뚜라미에게 받은 편지'는 이태원을  생각하며 한번 꺼이꺼이 울고 싶어지게 합니다.

<울지 마/엄마 돌아가신 지 언제인데/너처럼 많이 우는 애는 처음 봤다/해마다 가을날 밤이 깊으면/갈댓잎 사이로 허옇게 보름달 뜨면/내가 대신 이렇게 울고 있잖아>.

 

많이 알려진 짧은 시입니다만, 장석주 시인의 '대추'도 이 결실의 계절의 끝판에 다시 외워보고 싶습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이태원 참사와 정치상황에 분노와 조바심이 크실 분들에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드립니다.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인내를 가지라/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중요한 건/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그러면 언젠가 미래에/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그렇습니다. 답은 결국 나옵니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로 시작되는 너무 유명한 릴케의 <가을날>은 생략합니다.

 

지난 11월11일은 '빼빼로 데이'가 아니라 '농어민의 날'이었습니다. 어느 언론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은 지금 쌀값폭락과 농정(農政)실패에 항의하며 나락을 군청 마당에 부려놓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차옥혜 시인의 <쌀을 태운다>는 이런 농민의 분노를 웅변합니다.

<1.추곡수매 마당에서 쌀을 태운다/살을 태운다 뼈를 태운다 넋을 태운다/

 

2. 타는 쌀가마에 둘러서서/바위네 엄마가 영희네 아빠가 철수네 형이/눈물을 흘리는 것은/제 살, 제 뼈, 제 넋 타는 연기 때문이 아니다/아픔 때문이 아니다/제 몸에 불지르고도 타지 않는 노여움 때문이다>

 

오늘 마지막 시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절창(絶唱) '무엇이 남아'를 골라봤습니다. 주제어(主題語)를 연결하는 기법의 멋진 시입니다.

<힘들게 쌓아올린 지식은 사라지고 지혜는 남아/지혜의 등불은 사라지고 여명이 밝아오는 정의의 길은 남아/정의의 길은 사라지고 끝없이 갈라지는 두 갈래 길에서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남아/사람은 사라지고 그대가 울며 씨뿌려 놓은 사랑, 사랑은 남아>.

 

# 가을 정취의 영화와 음악.

 

내친 김에 '남자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영화 너덧 편도 소개해 보겠습니다.

뉴욕의 가을(조앤 첸 감독), 레옹(뤽 베송), 제3의 사나이(캐롤 리드), 유리의 성(장완정), 번지점프를 하다(김대승),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제 취향으로 가을에 들으면 좋은 음악입니다.

 

가을곡의 신(神)이 된 <고엽>(枯葉), 비틀스의 음반 러버 소울(Rubber Soul)중 <미셸>(Michelle)과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슈베르트의 곡 <겨울나그네>, 모리스 라벨의 <거울:3, 바다 위의 작은 배>.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과 유재하 1집 전곡, 그리고 1980년대 듀오 '어떤 날'의 <그 저녁에>입니다. 이 곡의 가사는 이렇게 끝납니다.

"인생은 참 어려운 노래여라".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청와대 춘추관장/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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