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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보오소나루, 이재명. 그리고 이태원:가디언21

룰라와 보오소나루, 이재명. 그리고 이태원

2022.11.06.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 기사입력 2022/11/06 [16:50]

룰라와 보오소나루, 이재명. 그리고 이태원

2022.11.06.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 입력 : 2022/11/06 [16:50]

"이 시간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정치인은 누 구일까?".

최근 한 외신(外信)이 이런 물음을 내고, "브라질의 대통령 당선자 룰라 다 실바"라는 답을 내놓았다.

 

브라질 현대사에서 가장 번영한 황금시기라 불리는 2002~2010년 브라질을 이끌었던 실바 전 대통령(77)이 다시 대통령으로 새 브라질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브라질 보오소나루(67)대통령   © 가디언21


그는 지난 달
30일 치러진 브라질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집권당 후보인 보오소나루 현 대통령(67)1.8% 포인트의 깻잎 차이로 물리치고 12년만에 대통령에 복귀, 내년 1월에 취임한다. 대통령을 그만둔 뒤 이른바 '세차(洗車)작전'이라 불렸던 검찰의 부패혐의 조작에 걸려 580일 동안이나 수감되었다가 201911월 무죄선고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할 것 같다. 

 

룰라의 승리는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로, 그가 '브라질의 트럼프'라 불리며 '증오정치'로 보수의 아이콘을 자처했던 현직 대통령을 물리쳤다는 점이다. 2019년 집권한 보오소나루는 70만여 명이 사망한 코로나19 방역실패, 아마존 훼손, 부유층 감세와 민영화, 소수자 혐오정책 등으로 비난 받으면서도 보수 유권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한 때 10% 포인트 이상 이겨온 룰라 후보가 낙승(樂勝) 아닌 신승(辛勝)을 하게 된 이유이다.

  

진보, 보수가 칼처럼 갈라진 대선 결과 나타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큰 과제는 있지만, 금속공장 선반공 출신인 룰라는 자신이 1980년 창당한 노동자당의 창당정신을 되새기며 대국 브라질의 위상을 강화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드는 데 노력을 집중할 것이다.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룰라는 "내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70)에 환경부장관을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아울러 아마존 삼림 불법 벌채와 토지약탈 등을 단속하고, 부유층 과세 강화와 빈곤층 지원 확대도 약속했다. 

 

룰라 다 실바 당선의 두번 째 의미는 중남미에 진보좌파 정권이 도미노처럼 들어서는 이른바 <핑크 타이드(Fink Tide)>가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작년의 볼리비아를 시작으로 올해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에 이어 지난 6월 콜롬비아에 좌파 정권이 들어섰고, 남미의 대국 브라질까지 좌파가 장악함으로써, 핑크 타이드가 완성된 것이다. 

 

중남미의 이런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 등 정치적 단층(斷層)의 변화를 가져오고, 곡물부터 금속까지 자원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등 국제적 역학관계의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다. 

 

룰라 승리의 세번 째 의미는 그의 인간적 승리가 주는 감동이다. 빈민촌의 8남매 중 일곱 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공장으로 갔다. 선반공, 구두닦이를 전전한 그를 정치로 내몬 건 출산 도중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버린 어린 아내의 죽음이었다. 이미 밤샘작업 중 새까손가락이 잘리는 산재(産災)를 경험한 그는 자연스럽게 노조 활동에 다가갔고, 서른살 때인 1975년 금속노조위원장이 됐으며, 35살인 1980년에는 노동자당을 창당, 정치에 진입한다. 

 

198641살로 하원의원에 당선한 그는 다소 무모하게도 1989, 1994, 1998년 세번 씩이나 대통령 선거에 나섰으나 계속 실패했다. '구두닦이 출신 하원의원' 혹은 '선반공 출신의 대선 후보' 정도로 불렸던 그는 노동자들의 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나친 친노조적 포퓰리즘 정책을 수정하고 실현 가능한 경제정책을 제시하며 보수파 진영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룰라는 2002년 마침내 57세에 대국 브라질호의 선장이 되었다.

연임까지 그의 8년 재임기간은 성공으로 점철됐다. 브라질의 국내총생산(GNP)은 연 평균 5%대로 성장했다. 

룰라는 자신의 지지그룹 주축인 노동자 계급을 수술대에 올렸다.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설득해 파업지원금을 줄였고, 정부부채 급증의 원인이었던 공무원연금 특혜도 폐지했다.

 

▲ 좌) 룰라 브라질대통령, 우)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  © 가디언21


빈민층이 중산층으로 오르면서 빈부격차가 줄었고
, 늘어난 소비로 기업이 활기를 띠며 경제가 살아났다. 8년 만에 브라질의 국가채무는 사라지고, 경제대국 8위에 이름을 올렸다. 반신반의했던 노동자들과 그를 업신여겼던 보수파들도 그를 더 지지하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룰라는 내 우상이다. 그를 깊이 존경한다"고 말하는 가운데, 임기 끝무렵 그의 지지율은 80%대를 찍었다. 

 

그는 여러 정치인을 닮았다. 4() 끝에 대통령이 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똑같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공장생활을 한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같다. 그리고 대통령 퇴임 후 검찰의 집요하고 악랄한 뇌물수수 밎 돈세탁 혐의 수사에서 580일 동안 수감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아 생환(生還)한 사례는 이재명 대표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될 법도 하다. 

 

재임 중 최고 지지율 87%를 기록했던 룰라가 내년부터 12년 전의 마법을 부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년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0.6%에 그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최대교역국인 중국경제가 주춤하면서 원자재 수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회는 보수세력이 장악하고 있어 첩첩산중이 될 가능성도 크다. 

 

내년에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취임하면 작년 만 79세에 취임했던 존 바이든 미국 대통령(1942년 생)에 이어 가장 고령(78)으로 취임하는 대통령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1924년 생)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1918년 생)은 똑같이 74세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오늘의 유일한 승자는 브라질 국민 뿐이다. 나와 노동자당의 승리가 아니라 정당을 넘은 민주운동의 승리다"라는 룰라의 국민통합적인 당선 소감을 되새겨본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말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말하는가?"라는 그의 쉽고도 가슴에 와닿는 질문을 되새기면서, 이태원 참사로 깊은 상처를 입고 휘청이는 이 나라를 거듭 생각한다. 우리 정치권은 룰라 같은 그런 애국애민(愛國愛民)의 메시지를 발송할 수 없는가? 

 

지난 6월 콜롬비아 대선에서 구스타보 페트로 좌파 후보(현 대통령)를 지지했다는 한 노동자의 외침을 들어보자.

"좌우는 중요치 않다. 나는 일하고 싶고, 자식들이 나보다 낳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공짜로 뭔가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일해서 성공하고,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싶을 뿐이다". 

 

이태원 참사로 여전히 충격과 절망감에 빠져있는 다수 국민들의 심정을 중남미 한 국민의 외침과 치환(置換)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

 

"사실, 진실을 알고 싶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고 싶다. 참사 4시간 전부터 숱한 112 신고를 받고도 왜 경찰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가. 파출소장부터 경찰서장, 경찰청장, 행안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까지 국민이 납득할 해명과 사과에 어찌 그리 인색한가? 구청장, 서울시장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려는가. 참사를 '사고'로 부르고, 희생자를 '사망자'로 고쳐야만 정부의 위신이 서는가. 목에 숯덩이를 칠하고 나타나 천공 스님을 떠올리게 해야만 하는가. 북한세력이 와서 떠밀었다는 목사와 같은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하는가. 참사 발생 8일인데 단 한 사람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문책인사도 없는 이게 도대체 나라인가".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청와대 춘추관장/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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